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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쉰이야, 정말 말도 안 돼" 삼풍백화점 참사 30년, 생존자의 심경 고백[과거의 오늘]
박지후 기자|
!["이제 쉰이야, 정말 말도 안 돼" 삼풍백화점 참사 30년, 생존자의 심경 고백[과거의 오늘]](/_next/image?url=%2Fsupabase-images%2Fnews%2Fnate%2Fnate_20250629n00028_1751156188368.webp&w=3840&q=75)
1995년 6월 29일, 서울 강남의 명문 백화점 임원실에서는 긴박한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경영진들은 건물 붕괴 위험성을 두고 영업 중단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사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바로 삼풍백화점 참사였다.
오후 5시 57분, 건물 5층 왼쪽 부분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연쇄 붕괴가 발생했다. 북쪽 A동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에 불과했다. 이 비극적 사고로 50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937명이 다쳤고 6명이 실종됐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임원들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어 무사히 살아남은 것이 아이러니였다.
개장 6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식 백화점이 무너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조사 결과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부실과 부정부패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부실 설계와 시공,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당시 삼풍건설그룹 이준 회장은 "백화점 붕괴는 고객 피해뿐 아니라 회사 재산 손실이다"라는 망언으로 비난을 받았다.
사고 당일 오전부터 이미 위험 신호는 여러 차례 나타났다. 건물 곳곳에서 균열이 발견되고 5층 식당 천장이 부분적으로 붕괴됐음에도, 경영진은 해당 구역만 폐쇄한 채 영업을 강행했다. 오전 10시에는 가스 밸브를 잠그고, 11시에는 진동을 줄이겠다며 에어컨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인근 주민들이 장보러 몰려들었지만 아무런 출입 제한이 없었다. 수천 명의 고객들은 건물이 기울기 시작한 오후 5시 50분이 되어서야 급히 대피하기 시작했다.
붕괴 원인은 무단 증축과 부실 공사였다. 원래 설계를 변경해 5층을 증축하고 200톤 규모 냉각탑을 설치했으나, 이로 인해 4·5층 구조물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과정에는 각종 비리와 정경 유착도 뒤얽혀 있었다.
구조 작업 역시 혼란스러웠다. 체계적인 지휘 시스템이 부재해 수백 명이 잔해 아래 갇힌 채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 최종적으로 구조된 생존자는 단 43명에 그쳤다.
당시 지하 1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선민 씨(49)는 최근 자신의 SNS에 "스무 살 때 살아남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 적 없다. 이제 쉰 살인데,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30주기를 맞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지만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비극이었다.
오후 5시 57분, 건물 5층 왼쪽 부분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연쇄 붕괴가 발생했다. 북쪽 A동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에 불과했다. 이 비극적 사고로 50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937명이 다쳤고 6명이 실종됐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임원들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어 무사히 살아남은 것이 아이러니였다.
개장 6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식 백화점이 무너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조사 결과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부실과 부정부패를 고스란히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부실 설계와 시공,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당시 삼풍건설그룹 이준 회장은 "백화점 붕괴는 고객 피해뿐 아니라 회사 재산 손실이다"라는 망언으로 비난을 받았다.
사고 당일 오전부터 이미 위험 신호는 여러 차례 나타났다. 건물 곳곳에서 균열이 발견되고 5층 식당 천장이 부분적으로 붕괴됐음에도, 경영진은 해당 구역만 폐쇄한 채 영업을 강행했다. 오전 10시에는 가스 밸브를 잠그고, 11시에는 진동을 줄이겠다며 에어컨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인근 주민들이 장보러 몰려들었지만 아무런 출입 제한이 없었다. 수천 명의 고객들은 건물이 기울기 시작한 오후 5시 50분이 되어서야 급히 대피하기 시작했다.
붕괴 원인은 무단 증축과 부실 공사였다. 원래 설계를 변경해 5층을 증축하고 200톤 규모 냉각탑을 설치했으나, 이로 인해 4·5층 구조물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과정에는 각종 비리와 정경 유착도 뒤얽혀 있었다.
구조 작업 역시 혼란스러웠다. 체계적인 지휘 시스템이 부재해 수백 명이 잔해 아래 갇힌 채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 최종적으로 구조된 생존자는 단 43명에 그쳤다.
당시 지하 1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선민 씨(49)는 최근 자신의 SNS에 "스무 살 때 살아남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 적 없다. 이제 쉰 살인데,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또 "30주기를 맞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지만 지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비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