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랭킹 속보

과도한 업무로 퇴사한 뒤 80번의 도전에도 실패... 지친 청년들의 취업 고군분투기

신채영 기자|
과도한 업무로 퇴사한 뒤 80번의 도전에도 실패... 지친 청년들의 취업 고군분투기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 7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성세대와 달리 낮은 직장 이동성으로 첫 취업을 신중하게 선택하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좁아진 재취업 기회로 인해 경력이 끊기면서 무직 상태가 장기화되면 사회적 고립과 은둔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평일 아침 7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출근할 때 한영석(30) 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고 있었다. 지방 4년제 대학 물류학과를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려 2022년 상반기 대기업 계열사에 합격했지만, 배치된 부서는 배송 업무의 최전선이었다. 한 달 20~22일 근무 중 14~15일을 야간 근무하며 신체적 한계를 느꼈고, 새벽 배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자괴감에 시달렸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일까?"

결국 2023년 9월, 1년 7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처음 몇 달은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지만, 재취업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80회가 넘는 이력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연락은 오지 않았고, 일부 기업들은 "적합한 인재가 없어 채용하지 않았다"는 모호한 답변만 돌려주었다. 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구직 의욕은 점차 사라졌다.

영석 씨와 같은 청년들은 통계상 '쉬었음' 인구로 분류된다. 15~39세 쉬었음 청년은 지난달 기준 68만 4,000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올해 2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8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이 연령대 쉬었음 청년 중 80% 이상이 취업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왜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걸까? 본지는 30대 미만 쉬었음 청년 7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제 정말 지쳤어요"**

소연 씨는 첫 직장을 떠올리며 얼굴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스스로 퇴사했지만, 재취업의 어려움으로 2년 가까이 쉬고 있다. 국립대에서 영상 제작을 전공한 그녀는 15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바이럴 마케팅 업무를 시작했다. 공휴일 없이 주당 20개의 영상을 제작해야 했고, 동료들의 퇴사와 친구의 암 투병 소식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직 제안을 받고 퇴사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로 무직 상태가 되었다. 이전 업계로 돌아가기 싫었던 그녀는 다른 분야에 도전했지만 취업 시장은 냉정했다. "실패가 쌓이니 구직이 두려워졌다"고 고백한 소연 씨는 현재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야근이 일상이었어요"**

이준열(31)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첫날부터 야근을 시작했고, 결국 건강 문제로 퇴사했다. 다른 직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그는 실업급여로 근근이 생활 중이다. 그러나 70대 부모님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경력 단절이 두려웠지만..."**

채영 씨는 대형 회계법인 자회사에서 최연소 여성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상사와의 갈등으로 신경성 위염을 앓았다. 퇴사 후 아이를 낳았지만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다.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부족해 가끔 알바를 하고 있지만, "눈을 낮추기 싫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인식**

이들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과도한 업무, 장시간 노동, 구식 직장 문화 등을 퇴사 이유로 꼽았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지금도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재취업은 쉽지 않다. 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업 문턱은 더 높아지고, 결국 고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눈을 낮추라는 말이 쉽지 않아요"**

도현 씨는 부모님의 권유로 이공계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체능 분야로의 진로 변경을 포기했다. "아무 데나 취업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조언을 들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점점 뒤쳐지면서 사회에서 숨게 되었다. "알바만 해도 혼자 살 순 있지만, 평범한 삶을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현실이다.

**고립과 은둔의 위험**

다은 씨는 치과 조무사로 6년간 일하다가 사내 갈등으로 퇴사한 후 9년간 고립 생활을 했다. 60곳 이상의 병원에서 거절당하자 방에 틀어박혔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됐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오랜 친구의 도움으로 청년 단체와 연결되었고, 현재는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 추산에 따르면 19~39세 청년 중 약 54만 명이 고립 또는 은둔 상태일 것으로 보인다. 준열 씨도 "어느 순간 '니트'를 검색해 봤다"며, 금전적 문제로 외부 활동을 점점 꺼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쉬었음은 증상일 뿐"**

청년들은 쉬었음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자발적 쉬었음은 일자리 미스매치로 인해 증가 추세에 있지만, 최근에는 경기 악화의 영향도 크다. 퇴사 후 1년이 지나면 근로 의지가 90%에서 50%로 급감한다.

영석 씨는 1년 9개월의 무직 생활을 끝내고 공공기관에 취업했다. 그는 "노동시장 개선과 함께 지친 청년들이 사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관련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