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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최우선"…성장호르몬 주사를 예방접종처럼 맞추는 한국 사회

최예나 기자|
"키가 최우선"…성장호르몬 주사를 예방접종처럼 맞추는 한국 사회
외모 평가 요소 중에서도 수치화 가능한 키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다. 자녀의 성장을 적기에 챙기는 것이 현대 부모들의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어머니 성모 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자녀의 학부모 모임에서 충격을 받았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대학병원에서 2년째 성장 주사를 맞히고 있다", "성조숙증 억제제와 성장호르몬을 병행 투여 중이다", "뼈 나이 검사 결과 평균 미달 시 바로 주사를 시작할 계획"이라는 대화가 오갔다. 성 씨는 "15명 중 성장판 검사를 받지 않은 아이는 우리 아이뿐이었다"며 "다른 아이들보다 작아 운동과 영양제 관리를 해왔지만, 이제는 병원 상담을 고려 중"이라고 털어놨다.

한국 사회는 키에 대한 집착이 특별히 강하다. 이는 단순한 선호를 넘어 사회적 우월성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취업과 결혼 시장에서 요구되는 '완벽한 인간상' 중 외모가 가장 중요시되며, 그중에서도 키가 객관적 평가 기준으로 통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30대 중후반 남성 평균 신장은 175cm, 여성은 162cm로 아시아 최상위권이다. 그러나 평균 이상의 키를 위해 성장호르몬제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세계인구리뷰 자료에 의하면 한국 19세 남성 평균 키는 175.52cm, 여성은 163.23cm로 중국과 함께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지난 100년간 한국인의 키 증가율은 세계 1위다. 1914-2014년 조사에서 한국 남성은 15.1cm, 여성은 20.1cm 성장했다. 경제 발전에 따른 영양 상태 개선이 주효했으며, 북한과는 약 10cm 차이가 난다. 특히 하체 비율이 2004년 43.7%에서 2024년 45.3%로 증가하며 서구형 체형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은 달랐다. 평균 키를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는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2007-2008년 방송에서는 키 작은 사람을 조롱하는 내용이 인기를 끌었고, 국가검진을 통해 자녀의 키 백분위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키 경쟁이 가속화됐다.

2009년 한 방송에서 '180cm 미만 남성은 패배자'라는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며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이 사건 이후 키가 개인의 능력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대되었고, 결혼정보회사에서 170cm 미만 남성을 제한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호르몬 시장이 급성장했다. 원래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나 터너증후군 환자에게만 보험 적용되던 특수 약물이, 한국에서는 일반 아동에게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시장 규모는 4배 증가했으며, 전체 투여자의 97%가 비보험 진료를 받고 있다. 연간 약 1,000만원의 비용이 드는 이 치료는 주로 수도권, 특히 강남 3구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트렌드는 성조숙증 억제제와 성장호르몬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주사'다. 일부 부모들은 만 9-10세 이전에 2차 성징이 나타난 아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이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한국 청소년들의 성장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충분한 수면과 운동, 균형 잡힌 영양 공급이 키 성장의 기본 조건이지만, 현실은 학업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고칼로리 식습관이 만연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중학생 평균 키가 오히려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나친 키 집착은 신체 이형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한 대학 졸업생이 부모를 비난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성장을 위한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사회적 인식 변화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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